KOREAN POP GENRES / 03
기타가 앞장서지 않아도 몸이 먼저 움직이는 음악. 1978년 한국 가요에 이 리듬이 들어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한동안 뜸했었지’를 틀면 노래가 시작되기 전부터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기타는 짧게 끊기고, 베이스는 앞으로 튀어나오며, 드럼과 건반은 빈틈을 주고받습니다. 이 곡의 재미는 멜로디만이 아니라 여러 악기가 함께 만드는 탄력에 있습니다.
사랑과 평화의 결성과 멤버, 1집 이야기는 이미 사랑과 평화 1부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밴드 연혁을 반복하는 대신, 그들의 음악을 예로 삼아 Funk라는 장르의 작동 방식을 귀로 따라가 봅니다.
먼저 구분하기: Funk는 Punk가 아니다
한국어로는 둘 다 흔히 ‘펑크’라고 적지만 Funk와 Punk는 다른 음악입니다. Punk는 1970년대 중후반 록 문화에서 등장한 빠르고 거친 음악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Funk는 미국의 소울과 리듬앤블루스에서 발전한, 리듬과 그루브가 중심인 음악입니다.
Funk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멜로디를 따라가기 전에 리듬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음악. 제임스 브라운을 비롯한 음악가들은 드럼·베이스·기타·관악기가 각자 긴 선율을 연주하기보다 짧은 리듬 조각을 반복하고 맞물리게 했습니다.
‘펑키하다’는 말은 조금 더 넓습니다. 곡 전체가 전형적인 Funk 장르가 아니더라도 베이스와 드럼이 탄력 있게 붙고, 기타가 리듬을 잘게 나누며, 당기고 미는 느낌이 강하면 펑키하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루브는 박자표에 적히지 않는 움직임이다
Funk를 이해할 때 가장 자주 만나는 말이 ‘그루브’입니다. 어려운 이론처럼 들리지만 뜻은 단순합니다. 같은 네 박자를 연주해도 어떤 음악은 반듯하게 걸어가고, 어떤 음악은 몸을 앞뒤로 흔들게 합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반복과 강세, 미세한 타이밍의 감각이 그루브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악기가 많이 연주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언제 소리를 내고 언제 비우는가가 핵심입니다. 한 악기가 잠시 물러서면 다른 악기가 그 공간을 채웁니다. 이 주고받기가 안정적으로 반복될 때 복잡한 연주도 하나의 단순하고 강한 리듬처럼 들립니다.
‘한동안 뜸했었지’를 네 번 들어보는 방법
한 곡을 악기별로 나눠 들으면 Funk가 훨씬 쉽게 들립니다. 아래 순서대로 같은 곡을 네 번 들어보세요.
첫 번째: 기타가 치는 음보다 쉬는 순간
록 기타를 들을 때처럼 긴 솔로나 큰 소리를 기다리면 핵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이 곡의 기타는 코드를 길게 울리기보다 짧은 스트로크와 커팅으로 박자를 잘게 나눕니다. 소리가 멈춘 자리에 베이스와 드럼이 들어오기 때문에, 쉼도 연주의 일부가 됩니다.
두 번째: 베이스가 만드는 또 하나의 멜로디
베이스는 낮은 음으로 화음의 바닥만 받치지 않습니다. 음과 음 사이를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드럼과 붙었다가 기타 사이로 나옵니다. 보컬을 잠시 잊고 낮은 음의 움직임만 따라가 보면 곡의 진짜 추진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드럼의 세기보다 배치
Funk 드럼은 무조건 세게 치는 연주가 아닙니다. 킥, 스네어, 하이햇을 어느 자리에 놓고 어느 순간 비우는지가 곡의 탄력을 만듭니다. 다른 악기가 자유롭게 움직여도 중심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네 번째: 건반이 채우는 짧은 색깔
건반도 배경 화음에 머물지 않습니다. 기타가 비운 틈에 짧게 들어오고, 전자피아노와 오르간 계열의 음색으로 리듬의 표정을 바꿉니다. 네 악기를 차례로 들은 뒤 전체 합주를 다시 들으면, 누가 주인공인지 고르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것이 이 음악의 매력입니다.
좋은 Funk에서는 악기 하나가 리듬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의 빈칸을 연주합니다.
왜 1978년의 대중은 장르를 몰라도 반응했을까?
당시 청자가 Funk라는 이름과 역사까지 알 필요는 없었습니다. ‘한동안 뜸했었지’의 가사와 후렴은 쉽고 친근했기 때문입니다. 낯선 리듬 위에 누구나 바로 흥얼거릴 수 있는 한국어 노래가 올라갔습니다.
최이철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 음반이 1978년 10월 28일 나왔고, 방송 출연 뒤 빠르게 바빠졌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주변에서 처음엔 베이스 소리를 낯설어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익숙한 노랫말과 당시로서는 생소한 연주가 정면으로 만난 셈입니다.
한국대중음악상은 사랑과 평화가 백비트를 강조한 리듬으로 Funk와 디스코를 표현해 한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합니다. 다만 이들을 ‘한국 최초의 Funk 밴드’라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최초’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각인시켰다는 사실
사랑과 평화 이전에도 미8군 무대에서는 미국 소울과 R&B, Funk가 연주됐습니다. 신중현 계열의 음악과 여러 그룹사운드에서도 강한 리듬과 흑인음악의 영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록 밖의 무대까지 생각하면 한 팀에 ‘최초’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사랑과 평화의 의미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전문 연주자들의 무대에 머물던 감각을 한국어 대중가요의 전면에 내세우고, 큰 인기를 얻으며 널리 각인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국 Funk 사운드를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들려준 선구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한국 록과 미8군 무대의 앞선 흐름이 궁금하다면 한국 록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에서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리듬은 장르 이름을 벗어나 가요 속으로 흘렀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Funk는 한때의 독립된 유행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80~90년대로 가면서 펑키한 베이스, 짧게 쪼개는 기타, 브라스와 신시사이저의 리듬은 댄스곡과 도시적인 팝, 퓨전 재즈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거친 연주자들이 이후 세션과 작·편곡 현장으로 이동했고, 훗날 봄여름가을겨울이나 빛과 소금처럼 합주와 그루브를 앞세운 팀들이 등장했습니다. 이것은 한 밴드가 다음 밴드를 그대로 복제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 세대의 연주 감각이 음반 제작과 공연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동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사랑과 평화가 1988년 3집에서 그 연주자 중심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어갔는지는 사랑과 평화 2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0초 청취 체크리스트
- 기타가 길게 울리기보다 짧게 끊기는가?
- 베이스가 드럼과 붙어 곡을 앞으로 미는가?
- 모든 악기가 동시에 채우지 않고 서로 빈 공간을 주는가?
- 멜로디를 몰라도 박자에 맞춰 몸이 움직이는가?
-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데도 지루하기보다 점점 깊게 들리는가?
이 가운데 여러 가지가 들린다면 이미 Funk의 핵심을 듣고 있는 셈입니다. 장르를 외우는 것보다 한 악기씩 골라 듣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다시 들으면 같은 노래가 다르게 들린다
‘한동안 뜸했었지’를 처음에는 보컬과 가사로, 두 번째에는 기타의 쉼으로, 세 번째에는 베이스와 드럼으로 들어보세요. 마지막에는 건반까지 포함한 합주 전체를 들으면 됩니다.
같은 곡인데 매번 다른 부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랑과 평화는 한국에 Funk라는 영어 단어를 처음 가르친 팀이라기보다, 그 이름을 몰라도 새로운 리듬을 몸으로 느끼게 한 밴드였습니다. 장르를 몰라도 괜찮습니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면 이미 절반은 들은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