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6 · ARTISTS

사랑과 평화 — 한국 펑크(funk)의 선구자, 그리고 “대겠지”가 아니라 “대었지”였다

1978년 사랑과 평화 1집과 ‘한동안 뜸했었지’를 중심으로 최이철·김명곤·이근수·이남이·김태흥의 연주와 한국 펑크(funk) 밴드의 시작을 살펴봅니다.

KOREAN BAND LEGACY 02 / 한국 밴드의 계보 ②

1978년, 전주 몇 마디만으로 “이 사람들 연주가 다르다”는 걸 들려준 밴드.

1978년, 노래보다 먼저 귀에 들어온 건 “연주”였다

“한동안 뜸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 지금도 첫 소절만 들으면 바로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곡을 다시 제대로 들어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밴드가 자기소개를 끝내버린다는 겁니다.

기타는 짧고 날카롭게 리듬을 잘라내고, 베이스는 노래 뒤에 얌전히 숨어 있지 않습니다. 건반은 빈틈을 메우는 반주가 아니라 곡의 색을 만드는 악기처럼 움직이고, 드럼은 네 박자를 단순히 세는 대신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드는 그루브를 만들어냅니다.

당시 사랑과 평화를 두고 “전주만 들어도 프로 연주자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1978년의 한국 가요에서 이런 펑키한 리듬과 집단 연주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꽤 낯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랑과 평화를 “한국 최초의 펑크 밴드”라고 단정하기보다는, 한국 대중가요에 펑크(funk)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심고 대중적으로 터뜨린 선구자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합니다. 여기서 펑크는 punk가 아니라 James Brown이나 Earth, Wind & Fire 계열에서 떠올리는 funk입니다. 리듬이 앞에 서고, 각 악기가 서로 톱니처럼 맞물리며 그루브를 만드는 음악이죠.

1집 멤버를 보면 왜 소리가 달랐는지 알 수 있다

사랑과 평화의 전신은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한 ‘서울나그네’였습니다. 이장희가 이들의 연주를 눈여겨보고 앨범 제작을 제안했고, 1978년 1집 《한동안 뜸했었지》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여기서 멤버 구성을 정확히 짚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송홍섭의 이름도 함께 떠올리지만, 송홍섭은 1집이 아니라 1979년 2집에서 베이스로 합류합니다. 1집의 핵심 크레딧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멤버 구성의 핵심은 “누가 반주하고 누가 노래한다”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다섯 명 모두가 리듬을 함께 밀고 당깁니다. 그래서 《한동안 뜸했었지》를 들으면 특정 악기 하나보다 밴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리듬 악기처럼 들립니다.

최이철의 기타는 특히 독특합니다. 록 기타라고 해서 길고 화려한 솔로를 앞세우기보다 짧은 스트로크와 커팅으로 리듬을 쪼갭니다. 그 빈 공간을 이남이의 베이스와 김태흥의 드럼이 채우고, 김명곤·이근수의 건반이 색을 더합니다. 한 명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의 빈틈을 이용해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한동안 뜸했었지” — 가사는 단순한데 연주는 전혀 단순하지 않다

이 노래의 재미는 가사와 연주의 온도 차이에 있습니다. 가사는 만나지 못한 연인을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하는 아주 친근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올라가는 연주는 당시 기준으로 꽤 세련되고 복잡합니다.

기타는 계속 리듬을 잘게 자르고, 베이스는 같은 음을 단순 반복하지 않고 곡 사이를 뛰어다닙니다. 키보드는 리듬을 받쳐주다가 순간적으로 전면으로 나오고, 드럼은 빈 공간마다 미묘한 액센트를 넣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복잡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몸이 먼저 리듬을 탑니다.

이게 바로 좋은 펑크(funk)의 특징입니다. 악기 하나하나만 떼어놓으면 꽤 바쁘게 움직이는데, 모두 합치면 단순하고 강력한 한 덩어리의 그루브가 됩니다.

그래서 “한동안 뜸했었지”는 히트곡이면서 동시에 사랑과 평화가 어떤 밴드였는지를 가장 짧게 설명해주는 명함 같은 곡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마지막 말, “대겠지”가 아니라 “대었지”

이 노래를 오래 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외로 자주 엇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후렴의 마지막을 많은 사람이 “달님에게 해 대겠지”처럼 기억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식 등록 가사에 적힌 표현은 “달님에게 해 대었지”입니다. 문장으로 풀어보면 더 분명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밤마다 달에게 털어놓고, 결국 달님에게 화풀이를 계속 해댔다는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그러겠지”라는 뜻의 ‘대겠지’가 아니라, 이미 그렇게 ‘해 대었지’인 겁니다.

노래에서는 리듬을 타며 발음을 붙이다 보니 ‘대었지’가 ‘대겠지’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미와 등록 가사는 분명히 ‘대었지’입니다.

“달님에게 화풀이를 해 대었지.”

한 글자 차이 같지만, 문장의 시간과 뜻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랑과 평화의 중심에는 왜 최이철이 있었나

밴드는 멤버가 바뀔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랑과 평화 역시 수많은 뛰어난 연주자들이 거쳐 갔습니다. 송홍섭, 장기호, 박성식 같은 이름만 봐도 이 팀이 얼마나 대단한 연주자들의 통로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초창기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할 때 최이철을 중심에 놓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이철은 원년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이었고, 오랜 기간 밴드의 사운드를 이끈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달빛” 같은 1집 수록곡의 작곡·편곡에도 참여했고, 이후 사랑과 평화의 펑키한 기타 색깔을 상징하는 연주자로 남았습니다.

부활을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김태원이 떠오르고, 시나위를 이야기하면 신대철이 떠오르듯, 이 시리즈가 1970~90년대 사랑과 평화의 음악적 정체성을 따라갈 때 중심에 놓는 인물은 최이철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복잡한 후일담이 있습니다. 최이철이 1999년 팀을 떠난 뒤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의 사용권을 둘러싸고 전·현 멤버 사이에 공개적인 갈등이 있었습니다. 현재도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팀이 있고 그 역시 긴 활동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사랑과 평화는 진짜가 아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지나치게 단순한 표현입니다. 대신 KOREAN POP ARCHIVE에서는 구분해서 보겠습니다. 현재 활동팀의 존재와 역사는 존중하되, 1978년 데뷔 음반에서 출발한 초창기 사랑과 평화의 사운드와 음악적 중심을 이야기할 때는 최이철의 역할을 핵심으로 다루는 겁니다. 이름의 연속성과 음악적 정체성의 연속성은 반드시 같은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밴드가 남긴 건 히트곡보다 “연주를 듣는 재미”였다

사랑과 평화 이후 한국 밴드 음악을 듣는 방법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가수의 목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베이스가 지금 뭘 하지?”, “기타가 왜 저렇게 짧게 끊지?”, “건반이 두 대나 필요한 이유가 뭐지?” 하고 연주 자체를 듣게 만드는 밴드였기 때문입니다.

1집은 훗날 한국 대중음악 명반을 꼽는 여러 기획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단지 추억 때문이 아니라, 1978년에 이런 리듬과 편곡, 연주가 이미 음반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들어도 놀랍기 때문입니다.

한국 밴드의 계보를 시대순으로 따라간다면 사랑과 평화는 반드시 초반부에 등장해야 합니다. 신중현이 한국 록의 뿌리를 만들었다면, 사랑과 평화는 그 토양 위에서 “한국 밴드도 이렇게 세련된 그루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음 밴드로 넘어가기 전에

신중현과 뮤직파워에서 사랑과 평화까지 왔습니다. 이제 한국 밴드 음악은 단순히 서구 록을 연주하는 단계를 지나, 자기만의 리듬과 색깔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다음 편부터는 같은 시기 등장한 밴드들을 실제 활동 시점에 맞춰 하나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 시리즈의 기준은 간단합니다. 유명했던 팀만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밴드가 등장한 뒤 한국 밴드 음악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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