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BAND LEGACY 01 / 한국 밴드의 계보 ①
미8군 무대의 기타리스트에서 9인조 밴드의 리더까지, 그리고 다시 태어난 「아름다운 강산」
처음 들었을 때, “우리나라에 이런 노래가 있었어?”
신중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를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미8군 무대가 떠오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미인」이나 「봄비」가 먼저 생각날 겁니다. 하지만 조금 뒤 세대에게 신중현을 가장 강렬하게 각인시킨 곡은 아마 「아름다운 강산」일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가 다시 연주한 버전은 요즘 말로 하면 “이게 정말 한국 가요 맞아?” 싶은 음악입니다. 기타가 곡을 끌고 가다가 브라스가 확 터지고, 여성 코러스가 들어오고, 분위기가 한 번 잡혔다 싶으면 또 다른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3분짜리 히트곡에 익숙한 귀로 들으면 한 곡이라기보다 작은 공연 한 편을 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TV 무대에서 이 음악을 처음 접했던 사람이라면 더 놀랐을 겁니다. 정장을 입고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하던 가수 중심의 무대와는 그림부터 달랐습니다. 여러 명의 연주자가 한꺼번에 소리를 만들고, 뒤에서는 코러스가 받쳐주고, 무엇보다 기타가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노래의 또 다른 주인공처럼 움직였습니다.
1. 시작은 화려한 방송국이 아니라 미8군 무대였다
신중현의 출발점은 1950년대 미8군 무대였습니다. 당시 미군 부대의 클럽과 쇼 무대는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재즈, 로큰롤, 블루스 같은 서구 대중음악이 실제 연주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신중현은 10대 후반부터 이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음악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는 여기서 외국 음악을 그대로 흉내 내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기타로 한국적인 멜로디와 정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고, 1962년 애드 훠(Add4)를 결성합니다. 1964년 음반까지 이어진 이 팀은 한국 초기 록 그룹의 대표적인 출발점으로 평가됩니다.
이후 신중현은 자신의 밴드만 만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정미, 박인수, 장현 등 여러 가수에게 곡을 만들고 사운드를 입혔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 뒤에는 늘 “한국 록의 대부”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실제로는 기타리스트·작곡가·프로듀서·밴드 리더 역할을 한꺼번에 했던 사람에 더 가깝습니다.
2. “한국적인 록”이라는 말을 실제 소리로 만들다
록 음악은 원래 한국에서 태어난 장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이 록을 한다는 건 단순히 미국이나 영국의 음악을 똑같이 연주한다는 뜻일까요? 신중현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의 기타에는 블루스와 사이키델릭 록의 흔적이 분명히 있지만, 멜로디를 끌고 가는 방식이나 반복되는 리듬, 보컬과 기타가 서로 밀고 당기는 느낌은 점점 신중현만의 것이 됩니다. 「미인」처럼 첫 몇 마디만 들어도 “이건 신중현 음악이다”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곡이 나온 것도 그래서입니다.
우리가 이 시리즈를 ‘한국 밴드의 계보’라고 부르는 이유도 같습니다. 누가 세계 최초로 무엇을 했느냐를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록이라는 음악이 한국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했고, 그다음 밴드들에게 어떤 길을 열어줬는지를 보려는 겁니다. 그 출발선에 신중현을 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3. 그리고 1980년, ‘뮤직파워’라는 거대한 밴드가 나타났다
1970년대 중반 신중현의 음악 인생은 크게 꺾입니다. 대마초 사건과 각종 규제로 오랫동안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웠고, 1979년 말 활동 규제가 풀린 뒤 그는 다시 무대로 돌아올 준비를 합니다.
그때 만든 팀이 ‘신중현과 뮤직파워’입니다. 이 밴드는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히 큰 9인조 편성이었습니다. 기타·베이스·드럼만으로 밀어붙이는 소규모 록밴드가 아니라 브라스와 코러스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록에 펑크와 소울의 색깔을 섞고, 무대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듯한 사운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대편성 밴드가 다시 꺼내 든 곡이 「아름다운 강산」이었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1980년에 처음 만들어진 곡이 아닙니다. 신중현은 이미 1972년 ‘신중현과 더 맨’ 시절 이 곡을 발표했습니다. 원곡은 10분이 넘는 장대한 곡이었고, 1980년 뮤직파워 버전은 약 8분 길이로 새롭게 편곡됐습니다.
같은 곡인데 느낌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1980년 버전에서는 날카롭게 잘라 치는 리듬 기타 위에 브라스가 들어오고, 두 여성 코러스가 신중현의 보컬을 감싸면서 훨씬 화려하고 입체적인 소리가 만들어집니다. 한 시대를 통과하고 돌아온 음악가가 자기 대표곡을 완전히 새 옷으로 갈아입힌 셈입니다.
4. 「아름다운 강산」은 왜 지금 들어도 이상하게 새로울까
이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보통 대중가요처럼 1절, 2절, 후렴을 반복하다 끝나지 않습니다. 시작은 리듬 기타가 문을 열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브라스와 코러스가 커지고, 중간에는 분위기와 리듬의 밀도가 계속 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밴드 전체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한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장르가 바뀌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곡 중간마다 장르가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갈아타는 것은 아닙니다. 록을 중심에 두고 펑크(funk), 소울, 브라스 록의 요소와 긴 즉흥 연주 감각이 계속 교차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장면이 계속 바뀌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편곡의 변화가 큽니다.
특히 여성 코러스는 단순히 뒤에서 “우~” 하고 받쳐주는 장식이 아닙니다. 신중현의 거칠고 묵직한 목소리와 대비되면서 곡의 색깔을 확 바꿉니다. 여기에 브라스와 리듬 기타가 겹쳐지면 당시 한국 가요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스케일이 만들어집니다.
이후 이선희가 1988년 이 곡을 다시 불러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면서 「아름다운 강산」은 세대를 넘어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뮤직파워 버전을 다시 들어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듭니다. “이 노래가 원래 이렇게 밴드 음악이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5. 그래서 한국 밴드의 첫 장을 신중현에서 시작한다
신중현을 “가장 인기 있었던 밴드 가수”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마다 더 많은 음반을 팔고 더 큰 팬덤을 만든 팀은 계속 등장했습니다. 중요한 건 그보다 앞에서 누군가 길을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미8군 무대에서 서구의 록을 직접 경험하고, 애드 훠와 더 맨, 엽전들 같은 여러 그룹을 거치며 한국적인 록 사운드를 고민했고, 활동 재개 후에는 뮤직파워라는 대편성 밴드로 또 다른 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밴드의 형태까지 바꿔가며 계속 실험한 셈입니다.
그래서 ‘한국 밴드의 계보’ 첫 편은 신중현과 뮤직파워에서 출발합니다. 다음 세대의 사랑과 평화, 산울림, 작은거인, 벗님들, 마그마, 무당, 송골매로 넘어가다 보면 이들이 신중현과 똑같은 음악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밴드가 자기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점점 넓어지는 모습이 보일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시리즈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바로 그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누가 더 위대한가”를 정하는 대신, 한 팀이 남긴 소리가 다음 팀에서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따라가는 것. 이제 그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