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POP ARTISTS / 01
히트곡보다 더 오래 남은 것, 끊임없이 다음 음악을 보여준 50여 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만 떠올리면 절반만 본 셈이다
조용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세대마다 떠올리는 노래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어떤 사람은 ‘창밖의 여자’를, 또 어떤 사람은 ‘단발머리’나 ‘친구여’를 먼저 떠올립니다. 199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꿈’이 있고, 더 어린 세대에게는 2013년의 ‘바운스’가 있습니다.
한 가수가 이렇게 서로 다른 세대의 플레이리스트에 동시에 들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조용필을 설명할 때 “히트곡이 많았다”는 말만으로는 조금 부족합니다. 중요한 건 그 히트곡들이 한 시대에 몰려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1968년 록그룹 애트킨즈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는 여러 밴드를 거쳐 솔로로 나섰고,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크게 알려지며 전국적인 가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1980년 1집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로 사실상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그 1집은 국내 가요계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됩니다.
1. 시작은 ‘가수’보다 ‘밴드맨’에 가까웠다
조용필의 출발점을 보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조금 다릅니다. 처음부터 발라드나 트로트를 부르는 솔로 가수였던 게 아닙니다. 기타를 잡고 밴드에서 활동했고, 미8군 무대도 경험했습니다. 애트킨즈, 김트리오, 조용필과 그림자 같은 밴드를 거쳤죠.
이 경력은 훗날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합니다. 조용필은 오랫동안 자신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공연해왔고, 노래만 잘하는 가수보다 “밴드와 함께 소리를 만드는 뮤지션”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그래서 그의 콘서트를 이야기할 때도 늘 라이브와 음향이 따라붙습니다. 방송에서 인기곡을 부르는 스타가 아니라, 큰 공연장에서 밴드와 함께 음악을 완성하는 가수라는 길을 아주 일찍부터 만들어간 셈입니다.
2. 장르를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곤란한 가수
조용필 노래를 장르별로 정리하려고 하면 금방 난감해집니다. 록도 있고, 발라드도 있고, 디스코도 있습니다. 민요와 국악의 느낌을 가져온 곡도 있고, 내레이션이 긴 대곡도 있습니다.
연합뉴스의 50주년 인터뷰에서도 그의 음악은 록과 판소리를 섞은 ‘자존심’, 디스코 성향의 ‘단발머리’, 민요를 받아들인 곡들, 대곡 형식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끊임없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것으로 정리됩니다.
이게 조용필을 특별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당시 잘 되는 스타일을 반복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지만, 계속 새로운 소리를 찾았습니다. 대중이 익숙해질 때쯤 또 다른 음악을 들고 나왔죠.
3. 1992년,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사라지지 않았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한국 가요의 물길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젊은 세대의 관심은 랩과 댄스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그때 조용필은 이미 데뷔 20년이 훌쩍 넘은 가수였습니다.
여기서 많은 장수 가수들이 과거의 히트곡을 반복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조용필은 조금 달랐습니다. 방송 활동을 줄이고 공연 중심으로 이동했고, 2000년대에는 대형 콘서트를 자신의 주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19집 ‘Hello’로 다시 대중 앞에 섰습니다. ‘바운스’와 ‘Hello’는 “옛날 가수가 젊은 척 만든 노래”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기의 팝 사운드 안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였습니다. 당시 조용필은 창법과 감정 표현까지 시대에 맞게 바꾸려고 했다고 직접 설명했습니다.
4. 그래서 ‘가왕’이라는 말이 남았다
조용필에게 붙는 ‘가왕’이라는 별명은 단순히 노래를 가장 잘한다는 뜻으로만 보면 재미가 줄어듭니다. 1970년대부터 LP, CD, 디지털 음원 시대를 모두 지나면서 매번 자신의 자리를 새로 만든 가수라는 의미가 더 큽니다.
국내 최초 단일 앨범 100만 장 돌파, 누적 앨범 1천만 장 돌파, 잠실주경기장 솔로 가수 최초 단독 공연 같은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숫자만 남았다면 지금까지 이 이름이 이렇게 강하게 남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국 조용필의 가장 큰 업적은 “오래 했다”가 아니라 “오래 하면서 계속 달라졌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 대중음악이 다음 단계로 갈 때마다 이미 그 근처에서 새로운 소리를 시험하고 있었던 가수.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조용필을 이야기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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